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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Part 3: 요리 학교 생활..쉽지 않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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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와이프님은 시드니에 무사히 잘 도착하셨고, 나는 그녀의 도착만으로도 긍정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 호주로 이민을 결심했을 때 2가지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첫 번째는 학교 선정이었고, 두 번째는 지역 선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큰돈을 학비로 지출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저렴한 곳은 또 아닌 것 같았다.

도시 선정은 시드니로 마음을 궂혔다. 왜냐하면 호주 제1의 도시이니 만큼, 일자리도 더 많을 것이고, 나에게는 기회가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도시를 선정하고, 에볼루션이라는 요리학교로 Certificate3,4 & Diploma 과정까지 등록하게 된다.

솔직히 이민이 목적이라면 굳이 디플로마 과정은 이수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의 이득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디플로마를 지원했지만 역시나 큰 이득은 없었다.

 

르꼬르동 블루 같은 비싸고 좋은 학교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솔직히 업계에서는 요리학교 출신을 많이 따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컸다. 워낙 Hospitality industry자체가 부족 직업군에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종이다 보니 항상 요리사들을 구하는 데 있어 학교 출신보다는 실력이나 영어 그리고 태도 등을 많이 보는 듯했다. 그와 더불러 유명한 식당에서 근무한 이력들이 있으면 다음 잡을 구하는데 훨씬 용이할 것이다. 하지만 유명한 미슐렝 식당들은 바쁘기도 바쁘거니와 경력자들을 위주로 고용을 하니 이점 착안하기 바란다.

 

아무튼 학교 입학을 하니 정원의 80%는 한국인인 듯 싶었다. 아마도 다 동일한 목적으로 지원했을 거라는 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분위기는 내가 알던 easy going의 호주 분위기가 아닌 다소 딱딱하고 엄격한 분위기였다. Sue라는 Senior Manager가 있었는데 그녀는 거의 독재자에 가깝게 행동을 했고 99%의 학생들이 불만을 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드니를 그녀의 이름에 따라 수드니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추후 그녀와 나는 큰 언쟁을 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한 Class에 약 20명 정도의 정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교는 일주일에 3번 정도 같던 거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그 20명 중 영주권을 취득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3 ~4 명 정도인 것으로 기억된다. 대부분 불합리한 근무환경과 힘든 교육환경 그리고 기타 등등의 사유로 중간에 그만두신 분들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IELTS each 6.0 영어 성적이 안 나와서 그만두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요리학교 수업은 이론 및 실기로 이루어지는데, 열심히 따라가면 그럭저럭 할 만하다. 그러나 이전에도 말했듯이 Chef로서의 삶은 그리 만만한 삶이 아니다. 브라운관에서는 어떤 요리도 뚝딱 만들어내며 멋있는 직종으로 묘사될 수 있겠지만 그 뒷면에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만무했을 거라는 것은 Chef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물론 세상에 쉬운 일 없다고 하지만 글쓴이 역시 여태껏 해봤던 일중 힘든 일을 고르라면 단연코 요리사와 관련된 일을 꼽을 것이다. 셰프는 상당한 중압감은 기본으로 버텨야 하고 멀티태스킹 능력 또한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어야 하며 빠른 업무력을 요구한다. 문제는 어느 회사를 가나 마찬가지 겠지만 인건비로 인해 키친을 항상 부족한 인력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및 중압감을 배로 느끼게 한다. Preps(요리 재료 준비해놓은 것)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서비스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심할 경우 서비스를 하면서 Prep도 같이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되면 전날 담당 프렙 담당자를 찾게 되고 그 사람은 욕을 먹게 된다. 만약 전날 너무 바빠서 못했다면 그 업무에 대한 중압감은 고스란히 다음 근무자에게 전달되고 그렇게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점심 서비스 혹은 저녁 서비스를 하게 되면 나는 기계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머릿속에는 이미 들어온 주문들이 순서에 맞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뿐더러 헤드 셰프나 수셰프 혹은 CDP들에게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한국어로 오더를 받아도 기억이 날까 말까인데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헤드 셰프의 고함에 가까운 오더를 받다 보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진땀을 뺀 기억도 비일비재하다. 받은 오더를 이해 못 해서 다른 것을 하고 있노라면, 돌아오는 건 고함소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셰프 근처의 물건들이다.

어딜 가나 영어권 국가에서는 영어가 발목을 잡는다. 바쁘게 일하다 보면 생전 처음 느껴보는 목 속 깊은 곳까지 타는 듯한 갈증과 퉁퉁 불어서 하얗게 된 발바닥, 흠뻑 젖어서 소나기라도 맞은 듯한 모양새에 머리는 100톤 망치를 맞은 것처럼 멍해지는 경우가 수없이 반복된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다치는 것도 일상이다. 천천히 하면 안 다칠 일들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바쁜 상황에 맞닥뜨리니 칼에 베이거나 기름에 데거나 오븐에 데이는 것은 셰프에겐 그저 열심히 일한다는 훈장이다.

 

키친은 냉혹한 야생이다.

일을 잘 못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고, 좋은 Reference(한국의 추전장 개념)를 얻을 수 없으며, 그 의미는 요리사로서 영주권을 취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연유로 많은 학생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만약 이러한 막강한 스트레스 및 중압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요리로 영주권을 취득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TV에서 보면 고든 램지가 얼굴을 붉히고 열을 내며 소리를 치는데, 고든 램지라는 사람 성격이 더러워서라기 보다는 키친 일이라는 게 그만큼 그 안에서 일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톱니바퀴처럼 상호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실수한다면 그 요리는 그 누군가의 실수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 한 명이라도 계속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 실수는 키친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빠르고 정확하게 순서에 맞춰 최상의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셰프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화엔 나의 업무 경력과 그 안에서 있었던 일화 등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글을 쓰며 그때 당시의 고뇌가 다시금 느껴지는 듯하다......

-BOH(Back of House): Kitchen 주방이다.
-FOH(Front of House): Hall staffs 홀서빙 쪽을 일 컫는다.

  FOH와 BOH는 바쁜 식당일수록 대체로 사이가 좋지 않다.
  서로의 실수를 헐뜯는 경우도 많다. 유연성 있게 잘 지내는 것도 공부해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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