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4월, 드디어 해밀턴 아일랜드라는 곳에 당도하게 된다. 첫인상은 좋았다.
도착하게 되면 유니폼 등을 지급받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이후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비치 클럽인데, 파인 다이닝 스타일의 음식들을 요리하는 곳이다.
항상 그러하듯 일이 힘든 이유는 인력이 부족하고 시간이 촉박해서 힘든 것이 대부분이고, 직장 내 Harassment(괴롭힘)이 있다면 그 정신적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글쓴이가 이렇게 서론을 연 이유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얘기해 보기 위함이다.
비치 클럽이라는 키친에 가보니 사이즈가 매우 작고 불편해 보였다. 키친 공간이 최적화된 느낌이랄까? 헤드 셰프는 항상 뚱한 표정으로 웃거나 화내는 모습을 거의 보기 힘들었고, Sous chef는 여자였는데 깐깐하긴 했지만 일을 가르쳐 주려는 의지도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다. 문제는 나와 같은 Commis chef 직급의 필리핀 남자 녀석이었는데, 나보다 2달 빨리 도착했다고, 나를 주무르려 하고 있었다. 기존에도 말했지만 글쓴이는 셰프 업무를 빠르게 잘하는 축에 속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텃세를 부린답시고, 이러고 있는 꼴이 참 그렇다.. 이거 참 쌍팔년도 군대에 온 것도 아니고.... 참.... 어딜 가나 이런 녀석들은 넘쳐난다.
셰프 직급은 Commis → Demi → CDP → Sous → Head → Executive 순인데,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일 잘하는 Commis만 많이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해밀턴 아일랜드도 영주권 비자에 얽힌 사람들이 많이 오다 보니 기존 경력이 CDP 혹은 Sous chef 이더라도 그들을 Commis chef로만 고용하던 곳이었다. 지출을 아끼기 위함이니 당연히 이해는 가지만 영주권 비자 관련 완력을 행사하는 느낌도 강하다 보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아니꼬우면 오지말던가 식인 것이다.
아무튼 업무 첫날부터 업무 파악할 틈도 없이 필리핀 Commis chef 녀석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키친에서는 사람 괴롭히려면 아주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트집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완벽하게 하려고 한들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일은 안 가르쳐 주면서 이일 저일 계속 나에게 던져주었다. 그래 놓고선 본인들 하는 방식이 아니라면서 다시 하란다. 아무튼 굳이 이곳뿐만이 아니라 업무환경이 좋지 않은 많은 곳에서는 이러한 일들은 항상 비일비재하다. 아무튼 녀석을 상대하느라 꾹꾹 참아가며 일을 이어가고 제법 모든 일에도 익숙해질 때쯤 주변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녀석 처음 올 때부터 고집이 세고 완고하게 굴어서 문제가 많았었다고.... 참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인터컨티넨탈 필리핀 여자 CDP에게 당했던 것이 있었던 터라 이 사건 이후로 필리핀 셰프들에 대해 약간의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아무튼 업무환경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셰프에게만 불 공정한 일터이고, 나머지 직업들에게는 업무시간, 오버타임 등등 매우 극과 극을 달리는 불공정한 곳임을 인지하게 된다. 하루 11 ~ 12시간 근무는 기본이고, 역시나 그렇듯 점심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은 구경해 볼 수도 없다. Payment는 공휴일 상관없이 38시간만 Ordinary hours로 지급된다. 간혹 다른 키친 가서 공적으로 도와줄 일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시간을 추가해서 페이 해준다.

개똥 피하려다가 소똥 만난 격이었고, 이제는 더 이상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꾹 참고 인내하기로 마음먹는다. 실제로 해밀턴 아일랜드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셰프들은 불만 상태가 거의 최고조에 이른 상태였고, 그러한 상황들을 볼 때 그들의 향후 요식업 사업이 걱정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영주권 취득을 위해 셰프들은 계속 충원이 되니, 회사 입장에서 안봐도 알만한 직원들의 불만 따위는 그리 크게 고려될 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함께 온 아내는 PA(Public Area)라는 Position으로 근무를 하였는데, 근무 출퇴근 시간도 정확하였고, 점심시간 및 휴식시간도 제대로 보장되는 등 문제가 없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A는 청소를 하는 일이었는데, 나 때문에 청소부를 하는 와이프를 보고 있자니 '내가 여기서 뭐하자고 사랑하는 아내를 청소부를 시키고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끔 했다.
아무튼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세일즈라는 비스트로 스타일 키친으로 업무지가 변경되었는데, 이곳은 이 섬에서 가장 큰 키친으로 매출 또한 어마어마했지만 셰프는 단 4명만 근무하는 Hell kitchen이었다. 이곳에 근무하고 있자니, 시드니 올림픽 파크 노보텔에서 근무하던 때가 연상되었다. 미치도록 바쁜 키친에 일하는 셰프는 3명밖에 없으니, 항상 Prep 준비하랴, 서비스하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했던 곳이었다. 거기에 더해 필리핀 Sous chef가 있었는데, 이 사람 또한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녀석인 마냥 괴롭혀대기 시작했다. 그냥 괴롭히기 위해 아주 사소한 꼬투리까지 잡으며 다 만들어 놓은 소스며 음식, 심지어는 Prep들까지 버리기 일쑤였고, 그에 따른 업무 부담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만 했다. 주어진 업무 시간에는 도저히 일을 마무리할 수가 없으니 원래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을 해야 했고, 만약 서비스 중 재료 부족 등등의 사유로 서비스가 지연되거나 음식을 제공할 수 없게 되면 그 문제로 인해 또 갈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Vicious circle(악순환)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고 있었다.
나는 참고 견디는 것 밖에 할 도리가 없었고, 후일 Fair Work에 신고할 자료들을 수집하기로 마음먹는다. 일을 정확하게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했고, 그 날은 그 Sous chef가 어떤 식으로 나를 어이없게 괴롭혔는지 등등등.... 그렇게 지옥 같은 곳에서 공짜 다이어트로 어마어마하게 몸무게를 감량하고 있던 2018년 12월 12일, 한통의 이메일이 Nucleus로부터 도착했다. 그렇다 RSMS 187 Visa가 Grant(승인)된 것이다. 그날은 그냥 행복하고 기뻤던 기억밖에 안 난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를 되뇌이며 일만 하다가 그래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니 '이제 오늘로부터 2년 후(RSMS 체류기간 조건) 면 이 지긋지긋한 해밀턴 아일랜드를 떠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목표가 보이는 것 같아 즐거웠다.
몸의 극한을 매일같이 끌어내서일까? 허리도 아팠지만 왼쪽 허벅지 부분이 기분 나쁘게 저리면서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손이 부족했던 터라 눈치가 보여 쉴 수도 없었던 나는 진통제를 먹으며 꾸역꾸역 일을 진행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 및 허벅지 통증은 심해졌고, 나중에는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조차 없게 된다. 계속 일을 시키던 헤드 셰프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몸을 먼저 추스르라며 병가를 허락하여준다.
'내가 허리가 무너질 정도로 혹사당했구나.....'
몸이 아프고 나니 앞으로 호주에서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하다못해 사무직도 의자에 계속 앉아서 근무해야 하는데, 의자에는 계속 앉아있을 수 있을까?'
'2년을 못 채우게 되면 영주권은 취소되는 걸까?'
여러 가지 걱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GP(General Practice, 호주 일반의)의 권유로 내륙으로 나가 이미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까지 CT촬영을 하며 진행하였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나는 마약성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따름이었다. 영주권이 문제가 생길까 봐 그만두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방황하고 있던 중, 어느 날 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이 나를 찾아왔다. 온몸은 식은땀 투성이며 몸은 한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세를 바꾸기 위해 몸을 돌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나는 와이프에게 다급히 "000"(한국의 119)에 전화할 것을 요청하였고, 섬 내 주둔하는 구급요원이 한밤중에 나의 방을 방문하였다.
나: "나는 고통이 너무 극심하니 헬기를 타서라도 내륙 병원을 가서 조치를 받아야 할 것 같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너무 아프다"
신음 섞인 목소리로 구급대원에게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
구급대원: "지금 야간이고 날씨 때문에 헬기가 뜨기 힘들어. 배도 조그마한 고속정밖에 없는데, 아마 그걸 타게 되면 충격파가 커서 더 아플 수도 있어"
나의 맥박 등을 체크하며 그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나: "나도 배는 탈 자신이 없어. 혹시 가능하다면 고통이나 좀 줄여주었으면 좋겠어. 내일 의사 만나서 추가로 상의할 때까지만 이라도.."
구급대원: "섬에 있는 의사에게 전화 확인 후 모르핀을 놔줄게, 현재로선 이게 최선일 것 같아."
그렇게 그는 Morphine을 투약해줬고 바로 해독제도 함께 투약해줬다. 이제 조금 나아질 거라며 혹시라도 심해지면 다시 연락을 달라면서 그는 업무를 마치고 돌아갔다. 나는 고통이 사그라들기를 간절히 기원했지만, 고통은 쉽사리 사그라들 줄을 몰랐고, 그렇게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후 다음날 GP를 만나러 갔다.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에 한걸음 한걸음이 지옥 같았으나 다른 방도가 없으니 이를 악물고 버티며 병원을 방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GP를 만난 후 기존에 먹던 마약성 진통제를 추가로 처방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통보한다. 영주권 비자의 존속이 걱정되기는 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GP는 호주에서 치료받을 것을 제안했지만, 나는 그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호주의 의료시스템을 못 믿는 게 아니라, 나는 이민자이기 때문에 수술 후 완쾌될 때까지 거처할 곳도 없을뿐더러 허리가 중요한 곳이니 만큼 한국의 큰 병원에 가서 정밀하게 다시 검사한 후 제대로 된 수술을 받고 싶어."
그러자 그 의사도 내 말에 동감이 됐는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와 내 와이프의 GP certification(의사 증명서)를 써주었고, 우리는 바로 다음날 비행기로 한국으로 향한다. 여담이지만 비행시간이 1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고통을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비행기 바닥을 굴러다니고 마약성 진통제를 다량 복용해가며 겨우겨우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2021년 05월 21일에 해밀턴 아일랜드 HR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그 당시 HIE(Hamilton Island Enterprise)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제대로 된 처우를 못 받고 일해왔다는 뉴스 보도가 터진 이후였다. 그들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나에게 $8400.77을 Salary review(급여 재검토)라는 명목 하에 입금하여줬다. 나의 엑셀 파일에 의하면 $13,010.35 였지만, 따로 신고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해당 금액을 지급받는다. 노동자의 권익에 앞장 서주는 호주 정부에 감사할 따름이다.
건강 잃으면 다 잃는 것 맞소!
건강은 건강할 때 챙기는 것도 맞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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