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3월 27일지옥 같았던 고통을 참아가며 비행기에서 드디어 탈출하게 되었지만 공항에서부모님 댁까지는다시 2시간 이상차량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정신을 부여잡고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부모님 댁에 도착한 후 디스크 수술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허리 수술하면 안 된다면서 수십 번은 더 만류를 하셨지만 부모님께 터진 디스크 부위를 제거만 하는 수술이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수없이 안심시켜드려야만 했다. 어른들은 '허리에 칼 대면 큰일 난다'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계셨기 때문에 수술을 진행하는 과정조차 쉽지는 않았다.
겨우 부모님을 설득하고 수술을 진행할 병원을 알아봐야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검증된 큰 대학병원에서 수술을받고 싶었지만,수술 예약이 꽉 차있었기 때문에 적게는 3개월 길게는반년 이상도기다려야 하는상황에맞닥뜨리게 된다. 한국에 오면 바로 수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오판이었다.
인맥 혹은 흔히 말하는빽이라도있었으면, 예약이 순조롭게 진행됐겠지만 의사 인맥이 없었던 우리 가족은 발만 동동 굴리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우연히 척추전문 병원 "우리들 병원 청담점"에 아는 지인을 통해 연락을하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는 입원하고 검사 후 그 다음날부터 수술이 가능하다는 확답을받게 된다. 신속하게 진행돼서 감사하긴 했지만 '혹여나 작은 곳에서 수술했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한 마음 역시 숨길수는 없었다. 아무튼2019년 03월 29일 디스크가 터진 부위를 MRI 검사를 통해 확인한 후 수술실에들어가게 된다.
디스트 수술 후
수술 후 병실로 옮겨졌다. 전신마취의 영향일까? 정신이 혼미하고 어질어질하며 몸이 나아지는듯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눌리고 있던 신경이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직까지는다리 저림 현상이나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셨다. 그래도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완료되었다고 안심시켜 주셔서 마음한편으로는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의사 선생님께서 '앞으로는 육체적으로 요리사로서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재발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무리가있을 것'이라는진단서도 영문으로 작성하여 주셨다.
수술 직후에는 여전히다리 저림 등아픈 느낌들이 느껴져서 수술이잘못되었을까 봐걱정이 됐었는데, 일주일 후퇴원할 때쯤에는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큰 불편함이 없었다. 여전히 엄지발가락에 감각이 잘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선생님께서 눌렸던 신경이 펴지는데 시간이 걸리니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을 하시니, 이제는 걱정보다는 재활 훈련에집중해야 했다.당분간 통원치료를 한 뒤 실밥을 뽑은후부터는본격적으로 걷기 운동 및 수영을 하면서 재활을 하는데 집중하였다.
수술 후 3개월 정도되었을 때쯤,해밀턴 아일랜드 인사과에서 나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나는 현재 몸상태상 돌아가서 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내용과 함께 영문 진단서를 함께 첨부하여 제출하였다. 그들은 이메일상으로 나에게 지속적으로 스스로 그만둘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였고, 나는 영주권에 문제라도생길까 봐,버티고 버티다가 그들에게 사직서를제출하게 된다. 호주 노동법규상 정규직(Full time or Part time) 직원은 회사에서 임의대로 퇴사처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하였던 듯하다. 아무튼 사직서 제출 후 영주권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잠을 잘못 이루었지만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할수밖에없었다. 그들은 나의 사직을 조건으로 해밀턴 아일랜드에 두고 온 나와 나의 와이프의 물품들을 무료로 한국으로 발송하여 준다고 제안하였으며, 그 제안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필요 없이 한국에서 대부분의 짐들을 편리하게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와이프 결혼 예물 목걸이 등등을 분실하여서 매우 속상했던 상황도 연출되었다. 우리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므로 속상해도 그냥 마음에 묻어두고 잊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약 7개월간을재활운동을 하며지내고 있던 때 쯔음, 호주 이민성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비자 취소 노티스가 없었고, 비자도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서 나는 다시 호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이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그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고, 결국 나는 나의 허리와 영주권을 맞바꾸게 된 셈이었다.
그놈의 영주권이 뭐라고....그냥 영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비자일 뿐인데...
허리 건강에 문제가 있으니, 호주로 돌아가도 무엇을 하며먹고살아야 할지막막했다. 혹시나 디스크가 재발이라도 될까 걱정되었던 건 당연하고, 성치 않은 몸으로 어떻게 앞날을 설계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이 시점부터 나는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건강잃으면 다 잃는다'라는 말이 맞음을...
2019년 10월 말 우리는 호주 브리즈번으로 정착을 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영주권만 취득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주권을취득하고 나니앞으로 먹고 살 걱정에 눈앞이 캄캄했다. 원래대로라면 Chef로 계속 근무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을텐데, 이제는 몸쓰는 일은 커녕, 하루종일 앉아있는 일조차 허리때문에 위험하니....
'이 망가진 몸으로무슨 일을하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없으니, 일단 부딪혀 보는수밖에없었다. 나는 내 건강을 최대한 지켜가며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알아보기 시작하였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아무튼 이제 영주권 이후의 삶이라는또 다른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글쓴이는 참 운이 좋았던듯하다.2020년 01월부터 Covid-19으로 비행기 탑승도 힘들어지고집 구하는것도 어려워졌었는데, 판데믹 2개월 전쯤 호주에 도착해서 차도 사고, 렌트할 집도 구하고, 직장도 구하고, 와이프 사업할 준비도 완료하였으니시기적절하게호주로 잘 넘어와서 큰타격 없이정착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